아이피스 수다2009/08/27 09:44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세화여고. 학생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체육관 안에 맑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숨을 죽인 채 노래를 듣던 학생들 사이에서 연방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들을 압도하는 가창력을 선보인 주인공은 한빛맹학교가 운영하는 한빛예술단 소속 그룹사운드 블루오션의 보컬을 맡고 있는 17세 소년, 1급 시각장애인인 김지호군이었다.

김군이 최근 발표한 노래
다만과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부르고 퇴장하려 하자 장내가 술렁였다. 노래 중간중간에 김지호, 김지호를 연호했던 학생들은 짧은 무대가 아쉬운 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연발했다. 안내 교사의 손을 잡고 퇴장하던 김군과 블루오션 멤버들은 결국 무대로 다시 돌아와 앙코르송을 불렀다.

김군이 처음부터 장애를 받아들이고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섰던 것은 아니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태어날 때부터 빛을 볼 수 없었던 김군은 크고 작은 16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시력
을 얻지 못했다. 김군은 작은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점맹(點盲) 상태다.

김군은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단다.
어느 날인가 TV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설명이 나왔어요. 그런데 듣고 있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나도 눈을 뜨고 싶은데 난 왜 안보일까하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화도 내고 친구들도 괴롭히고 방황을 많이 했었죠. 힘들었던 지난 날을 되새기는 김군의 표정에 쑥쓰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김군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것은 단연
음악이었다. 이날 공연에서도 부른 거위의 꿈은 김군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다. 특히 가사 중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해요라는 대목을 좋아한단다.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이런 노래도 있구나라고만 여겼죠. 그런데 자꾸 부르면서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다 보니 제 얘기와 통하는 가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명이란 벽이 제겐 시각장애라는 생각이 들고, 이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힘들 때마다 큰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노래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던 김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김군이
악기를 처음 만진 것은 3세 때였다. 피아노를 접한 김군의 음감(音感)이 남달랐다고 한다. 기억 속에선 지워졌지만 당시 김군은 청소기세탁기 소리도 피아노로 표현했다고 한다. 4세 때부턴 드럼을 배웠다. 김군은 교회에 갈 때마다 드럼 치는 소리가 너무 신기하게 들렸다고 한다. 김군은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처음엔 손으로 치는 줄 알았는데 부모님이 스틱을 손에 쥐어주셨다며 드럼과 인연을 맺은 과정을 들려줬다.




김군이 본격적인 뮤지션으로 활동한 것은 지난 2003년부터다. 한빛예술단 소속
한빛 브라스 앙상블에 들어가 드럼을 연주했다. 취미생활로 할 때와 달리 음악이 너무 힘들었다는 김군은 악보를 외우기가 너무 힘들어 스틱을 던져버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군은 2008년이 돼서야 노래를 시작했다. 예술단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교사들이 김군의 재능을 알아챈 것이다. 이 때부터 김군은 한빛예술단 소속
타악앙상블타악 12중주, 한빛 브라스 앙상블 등에서 퍼커션을 맡는 것과 더불어 그룹 블루오션의 보컬로 활동하게 됐다.

존경하는 뮤지션을 묻자 김군은 망설임 없이
스티비 원더라고 답했다.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감동적이란다. 시각장애인이 피아노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하려면 일반인의 열배, 백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스티비 원더의 그런 열정이 존경스럽다는 것이다.

김군 역시 엄청난 노력파다. 본인이 부른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 고쳐나가고 있다. 김군은 자신의 노래에 대해 얼마 전까지는 고음처리가 불안했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을 찾아가 훈련을 받고 발성 교정을 받으면서 많이 고쳐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은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체격이 작아 호흡이 길지 못한 게 가장 큰 불만이라며 하체운동, 호흡법 훈련과 함께 체중을 늘려 50초 동안 호흡을 참을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노력에 대한 하늘의 답이었는지 김군에겐 얼마 전 드라마같은 일이 벌어졌다. 일반인들이 장기를 겨루는 한 방송국 프로그램에 출연해 3주 연속 우승하면서 유명인이 된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팬클럽 카페가 생기고 공연 때마다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열혈팬들도 생겨났다.

이제 소위
떴다는 얘기를 들을 만 하지만 김군은 늘 겸손하다. 방송에서 3주 연속 우승을 차지한 순간에도 예술단 교사에게 저 교만해지려고 해요라고 얘기할 만큼 늘 겸손한 자세로 묵묵히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김군에겐 꿈이 있다. 음악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해 주겠다는 게 그 꿈이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큰 힘이 됐던 경험을 남들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김군은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음악을 통해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제 음악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입술을 깨물었다. 이달 초 블루오션의 첫 앨범을 낸 김군은 첫 앨범은 록발라드 중심인데 2집에선 리듬앤드블루스(R&B)에 도전해보고 싶다면서 3, 4집 때에는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도 선보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문화일보 사회면 <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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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풀